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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기록부

철없는 이상

by Amins 2020. 4. 24.

철없는 이상

 

오랜만에 친했던 형을 만나 삼겹살을 먹었다. 형은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예전엔 참 많이 같이 놀았었는데, 하며 한참동안 옛날얘기를 했다.

 

근황을 물었 논문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말했다. 

반가운 마음에 늘 그랬던 것처럼 한잔할래?” 라며 형을 부추겼다. 

하지만 형은 오늘밤까지 논문을 마무리해야된다며 거절했다.

 

형은 한 번도 술을 마다한 적이 없었다.



  

군복무 시간동안, 2년의 시간 동안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변했다. 나를 포함해서. 형도 마찬가지였다.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던 거친 욜로족은 이제 없었다. 다만 현실적인 대학원생이 거기 있었다.

 

예전처럼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그리고 예전에 형이 꿈꾸던 삶을 이야기했다.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을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형은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고민보단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형에게 나는 철없는 이상주의자였다.

 

내 기억 속 가장 자유로웠던 사람은 현실을 깨닫고 정착을 시작했다. 그 형만큼은 항상 재밌는 인생을 살 것 같았다. 감히 느끼건대, 슬펐다. 현실적으로 변한 형의 모습이 씁쓸하고 아쉬웠다. 미래는 우리를 현실적으로 만든다. 자기 걸 다 버리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3년 뒤의 나는 지금의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정말로 허무맹랑한 이상 속에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2020.4.24. 무한리필 생고기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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