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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구귀(巨口鬼) - 박지원
“서진아, 잠시만 기다려줘. 그 아이가 여기에 있을 것 같아.” 3년 전, 이 메시지를 끝으로 약혼녀 한예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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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거구귀라는 한국 장편소설을 읽은 후기다.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거구귀는 한국 전통 괴수로, 이름 그대로 동굴처럼 큰 입을 가진, 모든 걸 빨아들이는 괴물이다. 주인공 서진은 몇 년 전 실종된 약혼녀 예린을 찾기 위해 미지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 동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품 전반에서 다루는 주제는, 개인적으로 시스템의 형성과 몰락에 대한 이야기 라고 느꼈다.
시스템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집합체나 체계라고 한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체계'라는 점이다. 주로 사회 시스템의 효용은, 규칙 기반의 평화다. 평화라는 말은 주로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때에 따라 개인에게 통제와 희생을 강요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라는 시스템의 존재 목적은 구성원들, 즉 '국민'들의 무사와 안녕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들은 몇 가지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예컨대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을 일부 포기하는, 납세.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시행되는 징집, 이외에도 나의 거주지를 늘 국가에 증명하고, 국가가 정해 놓은 교육을 이행하고, 국가가 정해 놓은 규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을 온당히 지키지 않을 시에는, 국가가 시행하는 더 큰 자유의 통제, 처벌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일견 당연해 보이는 것들은 사실 개개인의 무제한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일부 '통제'하는 것에 있고, 그것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존속시킨다.
자유에 민감한 현 국민들이 그렇다면, 이런 통제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국민들 또한 그 일부의 통제가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된다고 합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나와 나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통일된 믿음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의된 자유의 반납을 통해 시스템이 형성되고, 이 시스템은 개개인을 통제함과 동시에, 보호한다.
거구귀의 동굴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거구귀를 모시는 종교 단체가 그 예이다. 교주는 시스템의 관리자이다. 교주의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이 시스템의 당초 목적은 사실 동굴 사람들의 안전이었다. 동굴 바깥으로 나가면 괴물이 되는 소설의 설정 상, 시스템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동굴 내 주민들이 동굴 밖을 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시스템은 강력한 규칙을 만든다.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건 위대한 신 거구귀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그러니 절대 나가지 말라고. 동굴 안에서 나고 자라온 사람들은 이 교리를 믿고, 따르며, 안온하게 살아간다. 아무 문제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교주는 주민들의 삶을 공포로서 수호하는 필요악의 파수꾼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스템 바깥에서 온 주인공에 의한 갈등이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동굴 바깥 세계는 그런 교리가 없다. 거구귀라는 이상숭배를 하지도 않으며, 원하는 대로 이동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권리인 시스템에서 온 주인공은 해당 시스템에 지독한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내부 주민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하는 주인공을 보며, 그리고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주인공 일행을 보며, 나는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라는 찝찝함을 느꼈다. 볼품없는 자유의 대가가 너무 컸다.
그러나 한 가지 이슈는, 한 소녀의 케이스다. 동굴 바깥으로 나가면 모두가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소녀만큼은 예외로, 사람인채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 아이만은 아무런 리스크도 짊어지지 않고, 온당한 자유를 만끽했다. 왜 그 소녀만 달랐는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았다. 궁금해서 작가에게 물어도, 답은 요원했다. 그래서 자의적으로 생각하건대, 나는 그 소녀가 세상의 무작위성을 상징한다고 여긴다.
눈에 선한 결과들이 있다. 안봐도 비디오,라는 말처럼 굳이 겪지 않아도, 기존에 이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귀납적 판단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귀납은 시스템의 입장에서 리스크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험들을 반추해, 가장 있을법한 미래를 가정하고, 그에 맞춰 규칙을 만드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다만 귀납의 맹점은 무작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래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거 같지만, 아주 때때로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소녀는 사람으로 남아 동굴을 탈출했고, 그녀만이 거의 유일한 예외를 낳아 부러움을 자아냈다. 주인공 일행이 탈출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에도 그 소녀의 역할이 나는 매우 지대했다고 믿는다. 이처럼 시스템의 규칙은 가장 최선의 결과를 낳으려 설계하다 보니, 이런 예외처리가 늘 골치다. 이제 동굴 주민들은 소녀를 보고 교주의 전지(全知)를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고, 규칙의 불완전성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시스템의 몰락이다. 그러니 결과론적으로 교주도 틀렸다. 이제 거구귀라는 교리는 동굴 주민들을 전처럼 강력하게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소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음, 사실 교주도 그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동굴의 시스템은 개혁을 해야 한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설명으로 납득시킬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이고 절대적인 시스템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이런 예외 사례에 매우 취약하다. 그렇다면 이제 교주의 역할은, 교주가 아니라 대표가 되어야 한다. 동굴 밖을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거구귀의 진노를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굴 밖을 나가면 괴물이 되는 '위험'이 실존하기 때문이니, 대표인 나의 통제를 따라 달라고 말해야 한다.
즉 진정 주민들을 위해서는 효율적인 교리가 아니라, 조금 비효율적이더라도 객관적 상황을 인지시켜야 한다. 예외가 있지만, 매우 소수라고. 그러니까 여기서 살자고. 나는 이 책의 흐름이, 마치 암흑시대의 기독교적 규범에 따라 만들어진 시스템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몰락하고, 이성과 인본주의 위에 새로운 시스템이 쓰여진 중세부터 근현대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제 사람들에게 해가 왜 동쪽으로 뜨는지를 설명하려면 복잡하게도, 천체의 개념과 지동설, 그리고 자전의 원리를 설명해야 한다. 기존에 '신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한마디로 정리되던 시스템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마지막에 동굴 사회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서진의 난장으로 동굴사회에서도 보다 진보된 시스템이 들어설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공포 소설이지만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은 책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말이 없어 술술 읽혔다. 좋은 글은 어렵고 현학적인 글이 아니라, 쉬운 말로 쓰여 읽기 좋은 글이라고 했다. 거구귀는 좋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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