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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기록부

토막글 백업 02

by Amins 2024. 10. 18.

#위로

위로는 별 위로가 안된다.
뭐 기적적인 마법 주문이 있어서 그 말만 들으면 막 위로가 되고 하루가 편해지고 나날이 즐거워지는? 그런 건 없다. 그냥 그거라도 없으면 더 힘드니까 하는 게 위로다.

삶은 주로 힘들고 외롭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우린 사실 살려고 행복하는 거다. 매일 아프고 힘드니까, 그나마 조금 덜 아프려고. 덜 힘드려고.

다들 필사적으로 산다. 필사적으로 살다 보면 다만 죽고 싶어 진다. 죽고 싶어서, 죽지 않을 정도로 재미를 찾는다. 찾을 수밖에 없다.

힘들었고, 내일도 또 힘들 테지만, 일이 끝나고 잠깐 술 마시고, 노래하고, 떠들고 노는 지금 찰나는, 그래도 인생이 조금 재밌다.

그건 너무 좁쌀만 한 행복이지만, 그거면 안 죽고 겨우겨우 살아 낸다.

삶은 죽도록 힘들지만, 한 순간 넘겼을 때는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거다.
삶이 힘들면 비로소 음악이 맛있고, 술이 시원하다. 아니 맛있고 시원해야 한다.

그런 일상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천하에 수두룩함을 알자. 뭐, 물론 이것도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다만, 혼자 힘든 거보단 아주 조금, 덜 아프게 살아지게끔 만들지도 모른다.


# 종교

종교는 필연적이었다. 사람이란 언제 어디서나 이유를 찾으려 드는 존재이므로, 자기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세상이 존재하는 원인을 찾지 않고는 못 견딘다. 신, 이 한 단어는 모든 궁극적 원인을 해갈하는 마법이다.

과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왜 비가 오는지 모르고, 왜 먹어야 살 수 있는지 모르고, 왜 심장이 뛰는지 몰랐다.

두려웠을 것이다. 몸속에 무언가 두근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엇인지 모르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게 무서웠을 거고, 굶주림의 고통이 무서웠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단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은 결단코 공포다.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무력하고 무지하다. 그것은 명백한 두려움이다.

신은 이 무지무력을 해소한다. 내리는 비는 신의 눈물이요, 뛰는 심장은 신의 노랫말이다.
더 이상 세상은 무섭지 않다. 과실은 신의 육신이 되고, 소금은 신의 유해가 된다. 신화는 각각의 식품에 위생 증명서를 찍어주는 것이다.

신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부여한다. 비로소 사람들은 공란으로 비워져 있던 삶의 원인에 자신 있게 신을 써넣는다.

공란이 채워지면,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은 끝난다. 삶에는 방향이 생긴다. 방향이 생긴 사람은 숨을 쉬고, 살아가며, 사랑한다.

신을 통해, 비로소 사람은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즉 신화는 인간성을 유지시킨다.

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의 전쟁은 최첨단 무구들과 인공지능이 도입된 최초의 미래형 전쟁이라고 한다.

그 첨단 전쟁의 발생 원인은, 여전히 몇 천년 전과 같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사회를 이해하려면, 여전히 종교를 알아야 한다.



# 나라를 잃은 난민의 이야기

내 상체는 가끔 내 하체를 타인처럼 타고 다니며 착취했다.

너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발에서부터 왔다.

발은 어디서 왔는가.
발은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의 동생인 잠에게 훨씬 더 많이 패배한다.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어둠에 깃들게 하라.
보이지 않는다면 순순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순종은 청각이다. 듣는 것. 듣게 하는 건 순종하게 하는 것.

침묵이 계속되면 그 자체로 소리가 된다.

밀항하는 배의 어두컴컴한 컨테이너 속에서 쓴 글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직 듣는 것 만 할 수 있던, 꾸벅 꾸벅 졸던 작가는 극도의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메이지 않은 발, 디딜 곳이 없는 발은 다만 순종할 뿐이었다고 한다.

#착한 일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받는 상대의 부끄러움 한 점을 이기지 못한다. 봉사받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 고마움은 늘 저편으로 밀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노력한 과정이 상대방의 머리엔 그려지지 않는다. 때문에 덜 고맙고,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봉사는 언제나 서툴러 보여서 사람들이 쉽게 비웃는다.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일까?

더 철저해져야 한다. 선한 의도로, 선한 일을 하고자 하려면 더 성실해야 한다.

선한 의도는 절대 선한 결과를 그저 불러오지 않는다. 선한 결과는 의도가 아닌 행동에서 도출되며, 행동은 철저히 계산되고, 분석되고, 정확히 시행되어야 한다.

차라리 범죄를 계획한다 셈 치고, 무척이나 철저하게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선의가 선의로 남을 수 있다.

범죄자들조차 한 번의 범죄에 정성을 다한다. 살인자라면, 범행 도구, 시각, 타깃의 생활 패턴, 후처리, 알리바이... 사람 하나를 담그기 위해서도 이다지도 고려할 게 많은데, 하물며 선행이라 다를까.

선을 행하려거든 반드시 악인보다 철저해져야 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필사의 각오로 선을 계획하고 행하자.

착한 일은 어려운 일이다.


#농담

농담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농담은 종종 무례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싱거운 대화, 재미없는 대화부터 시작하라. 무미한 대화에서부터 점점 올라가야 그 사람의 선이 어디까진지를 알 수 있다.
시작부터 선을 넘는 자극적이고 웃긴 자리에 가면 무례해질 수 밖에 없다. 선을 모르니까.
대화는 연착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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