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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기록부

by Amins 2024. 10. 6.

사람과 술을 먹는 건 재밌다. 술은 몸을 데우고, 마음을 연다. 덥혀진 몸과 무방비의 마음은 누구와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한다. 한가지 단점은 언젠간 술자리는 끝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항상성을 지닌다. 제 자리로 돌아오고자 하는 성질이다. 추우면 몸을 떨어 열을 내고 더우면 땀을 흘려 몸을 식힌다.

감정도 신체이므로, 항상성은 적용된다. 슬플 때면 즐거움을 야기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한바탕 울면 개운해지는게 이 때문이다. 반대로, 즐거울 때면 몸은 곧 진정 호르몬을 내뿜어 과도한 감정의 발산을 억제한다.

술은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몸은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와중에 술자리는 끝이 난다. 갑작스레 고독을 마주한 지친 몸이 천연 진정제까지 투여받으면, 마음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늘 고독하고 그래서 늘 심연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러면 좀 나았다. 한시도 고독하고 싶지 않았다. 음성으로나마 온기를 붙잡으려 했다. 예견된 종말을 일초라도 미루곤 했다.

이젠 그러지 않는다. 끝난 술자리의 모서리를 움켜잡고 늘리며 미루어 봤자 더 겹겹이 쌓인 고독을 맛보게 된다는 걸 안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 선생 가라사대, 할 때 좋은 것 말고 하고 나서 좋은 게 진짜 좋은 거라고 했다. 전자는 유흥, 후자는 운동 같은 것이리라. 난 이 말이 즐거움의 부작용인 고독을 주의하라는 것 같다.

술 먹는 빈도가 줄어든다. 할 때 더할 나위 없이 재밌어서, 다가올 고독이 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재미없게 산다며 괄시했다. 이젠 안 그런다. 알았던 거다. 즐거움에서 평소로 돌아오는 내리막을, 우울이나 고독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던 거다.

더 행복해지는 방법은 안 행복한 일들을 덜 겪는 것이고, 그 방법은 필요 이상 많이 행복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 필연적으로, 슬픔도 우울도 매한가지 일 것이다.

술 마시고 집에 걸어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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